프랑스 생활 - 프랑스 병원 “기다림”
사람이 병들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의료 기술이 계속 발전하여 병없이 쾌적한 삶을 살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면서 이번에는 프랑스 병원 시스템과 제 경험담을 이야기 해드릴까 합니다.
병원이라는 곳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은 곳이고 그러다 보니 거리감이 느껴지고 생각만 해도 불편하기 마련이지요.
그러나 아프게 되면 필수 불가결한 곳이 됩니다.
내 나라도 아닌 외국에서 병원을 가게 될 때는 더 불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프랑스의 병원 시스템은 정말 느립니다.
프랑스에 거주한 지 8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도 이 기다림은 적응이 되질 않습니다.
이곳 의료 시스템은 의사를 만나는 것부터 모든 것이 예약을 해야만 가능한 곳입니다. 물론, 응급실은 예외입니다.
병원 전화 예약은 이제 숙달이 되었지만, 유학 초기만 해도 전화하기 전에 스크립트를 미리 준비하고 연습한 후에 전화를 했습니다. 특히 날짜를 불어로 말할 때면, 프랑스 숫자가 익숙하지 않아 대답을 하는데 몇 초씩 걸리곤 했지요. 그리고 예약을 하면 가장 빠른 날짜는 늘 일주일 또는 이주일 뒤였습니다.
최근에는 병원 예약 어플이 생기면서 전화 예약을 해야 하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예약 가능 날짜를 바로바로 확인할 수 있어서 많이 편해졌습니다.
그래도 모든 의사가 어플에 등록되어있는게 아니기 때문에 전화 예약은 늘 필요합니다.
일반의 같은 경우에는 빠르면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면 만날 수 있지만, 전문의는 분과에 따라서 기다려야하는 기간이 더 길어지기도 하는데요. 전문의를 만나게 되는 경우 평균 한 달 정도는 기다린 것 같습니다. 기다리다가 병이 낫는 경우도 있어요.
프랑스에 거주하게 되면 의료보험은 필수인데요.
프랑스 의료보험에 들고 병원을 가게 되면 초반에 해야 할 일이 주치의를 정하는 일입니다.
사실 주치의를 정하지 않아도 진료를 받는데 크게 문제는 없으나, 전문의를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으면 주치의를 정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주치의가 환자의 진료를 추적할 수 있거든요.
프랑스는 1차 적인 모든 진료를 일반의(généraliste)에게 진료받고 전문의가 필요할 경우에 일반의(주치의)의 진단 아래에 전문의를 만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목이 아프거나 귀가 아프면 바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하면 됩니다. 그러나 여기는 목이나 귀가 아프다고 해서 바로 이비인후과를 방문할 수 없다는 뜻이지요. 일단 일반의(주치의)가 확인을 하고 전문의의 진료가 필요할 경우에 처방서를 써주게 됩니다. 그 처방서를 가지고 진료받하고자하는 이비인후과 의사를 만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 보니 전문의 진료를 위해 예약을 하게 되면 꼭 주치의의 처방서가 있는지 확인합니다.
다행히, 치과나 산부인과는 일반의를 통하지 않고 바로 예약 및 진료가 가능합니다.
여기서 제 경험담을 하나 이야기 해드리겠습니다. 프랑스 병원 진료가 어떤지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지난 연말부터 속이 불편하고 소화가 안 되서 제 주치의에게 갔습니다. 주치의 선생님이 소화제를 처방해 주었습니다. 일주일이 지나도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또 주치의를 만났습니다. 똑같은 문제로 두 번을 방문한 후에야 소화기관 전문의 진료를 허락 받고 전문의와 약속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증세가 시작된 것은 2018년 말, 전문의를 만난 날은 2019년 1월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한 달 정도 저는 소화 기관의 불편함과 처음 느껴보는 증세에 대한 불안함을 안고 전문의의 진료일만 기다렸습니다.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긴 적이 처음이라 아는 전문의가 없어서 주치의 선생님이 알려준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너무 허무하게도 3분도 채 되지 않아 제산제를 처방 받고 소화기 전문 병원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소개받은 전문의가 너무 무성의 했거든요. 주치의의 소견서를 전달하고 한 달 정도 소화가 안 되서 너무 불편하다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아직 젊어서 괜찮다. 한 달 정도면 얼마 안 되서 별 문제 없다.” 였습니다. 주치의의 소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결론은 환자의 요구 사항을 거부한 것이지요. 어떻게 확인을 해보지도 않고 그냥 말로만 증세를 진단할 수 있는지 정말 황당했지만, 프랑스 친구의 말이 그런 의사가 적지 않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전에 전문의를 꼭 알아보고 만나야 한다면서 친구가 다른 내시경 의사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주치의 선생님에게 받은 소견서는 이미 소화기관 전문의에게 제출했기 때문에 다른 소화기관 전문의를 만나려면 다시 주치의를 만나 소견서를 또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또 주치의를 만나러 갔습니다.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내시경 전문의의 처방을 받았기 때문에 그 처방에 일단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처방 받은 제산제를 2달 동안 복용한 후에 다시 오라는 답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그 처방제를 복용 후에 호전이 있는 것 같아서 저는 그렇게 괜찮아 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정확히 2달의 제산제 복용이 끝난 후에 증상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2달이나 먹었는데, 약이 끝나자마자 증상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은 약이 증세를 완화시킬 뿐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4월 초에 다시 제 주치의를 만났습니다. 전문의의 처방 후에도 개선되지 않았으니 주치의도 내시경 전문의를 만나기 위한 소견서를 써 줄 수 밖에 없었지요. 이번에는 주치의를 만나기 전에 친구가 소개해 준 내시경 전문의와 예약을 먼저 잡았습니다. 내시경 전문의 비서가 저에게 소견서의 유무를 확인할 때, 저는 무조건 소견서를 다시 받을 생각이었기에 소견서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정말 급했거든요.
4월 초에 전화를 했는데, 내시경 전문의의 가장 빠른 진료일은 4월 중순.
저는 또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번에 전문의를 다시 만나면, 내시경을 꼭 받고 싶었습니다. 증상을 설명하는대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곳 의사들을 더 이상 믿을 수 없었고, 의료 과학이 발전해서 내시경 카메라 한 대면 말하지 않고도 문제를 확인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사람을 피말리게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4월 중순이 되었고, 저는 전문의를 만났습니다. 이번에 만난 내시경 전문의는 친구의 말대로 정말 쿨했습니다. “그래. 내시경합시다!”. 너무 허무할 정도였죠. 처음부터 이 의사를 만났더라면 4개월을 기다리지 않아도 됐을텐데, 저도 모르게 자신을 탓하게 됐습니다. 기다림에 지칠대로 지쳤었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내시경을 받기까지 또 2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2주 사이에 마취 전문의를 만나서 마취를 해도 문제가 없는지 진단을 받아야 했고 내시경 진료를 하는 요일이 정해져 있었기에 그 날까지 저는 또 기다렸습니다.
정말 내시경 한 번 받기 위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4월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처음 받아보는 내시경이라 겁이 나긴 했지만, 결과를 당일 바로 알려준다는 말에 저는 너무 설렜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시작된 시술은 마취 때문인지 순식간에 끝난 것 같았고, 정신을 차리고 얼마 안되어 의사 선생님의 진단을 받았습니다.
“외관상으로 보이는 병은 없다. 전부 정상이다. 조직 검사를 통해서 다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할 예정이다.”
저는 이 결과를 듣기 위해서 장장 5개월 가량을 기다렸습니다.
안도했고 허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기다립니다. 조직 검사가 또 2주 걸린답니다.
이번 일로 저는 또 한 번 프랑스 시스템에 학을 뗐습니다.
사실, 프랑스는 병원 시스템만 그런게 아니라 모든 행정 업무들도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이골이 날 법도 한데, 저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여전히 이해가 안 되고 자주 지칩니다.
그래도 빨리 진료 받는 요령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몸이 살짝이라도 안 좋거나 불편하면 일단 병원부터 예약부터 합니다. 증상이 심각해져서 병원을 가려고 하면 응급실 말고는 또 기다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증상이 괜찮아 지는 것 같다 싶으면 예약을 취소합니다. 조금 황당한 방법일 수도 있지만, 기다림에 지쳐 생긴 저만의 생존 방법이 되었어요. 너무 늦지 않게 취소하면 피해주지 않는 선에서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으니까요.
한국 대부분의 서비스는 엄청 빠른 것 같아요. 한국에서 지낼 때는 기다림에 지쳐본 적은 없으니까요.
그러다 보니 여유를 잃어버릴 때가 있어요. 반면, 프랑스의 삶은 느린 서비스 만큼이나 느린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좋을 수도 없고 모든 것이 싫을 수도 없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유투브를 보다가 발견한 글귀예요. 내시경 진료를 기다리는 내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 하나의 에피소드가 되었네요.
기다림의 연속인 프랑스 진료를 경험하는 분이 많지 않길 바라면서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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